내가 서른이 넘어서 또 '데미안'을 읽을 줄이야...

생각

내가 서른이 넘어서 또 '데미안'을 읽을 줄이야...

이보통입네다 2020. 10. 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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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데미안 책을 접한 건 16살. 솔직히 그때는 책이 어려웠다. 자뻑 내음 가득한 작가가 쓴 어려운 책 정도로 치부했다. 이해도 0%.

 

다시 책을 본 건 23살. 당시 알바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곤 했다. 자뻑 가득한 책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보니 달랐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을 때라 그런지 내용이 이해되고, 공감도 갔다. 하지만, 그리 재밌지는 않아 조금 시간 걸려 완독 했다. 이해도 50%.

 

또 다시 책을 편 건 29살. 이직하고, 독립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걸 했다. 여행도 가고, 취미도 배우고, 친구들을 만나는 등. 그러다 데미안 책이 생각나 다시 읽었다.(이상하게도 이 책은 가끔 생각난다.) 그때는 부모와의 경제적, 정서적 독립으로 갈등이 있었던 시기인데 와 닿는 내용 너무 많았다. 이해도 80%.

 

세번 읽은 책이니까 잊고 있다가 올봄. 다시 이 책을 꺼냈다. 다시 한번.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게. 내 나이 34살에 다시 또 이 책을 꺼낼 줄이야. 내용이 너무 와 닿아서 이번엔 정독해서 읽었다.

 

'청춘의 바이블'이라고 부리는 '데미안'은 유명한 책이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통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과 동일시되어 울며 공감하며 큰 이슈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오롯히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누구나 겪어 봤고, 누구나 이해 가능한 내용이다. 특히나 주체적인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

 

29살에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데미안을 또 읽진 않을거라 예상했다. 내가 생각했던 30대 중반은 적어도 성장통을 끝내고, 오롯이 내가 중심을 잡고 사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제 나는 내 직장과 내 미래 그리고 독립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는구나! 드디어 나를 찾았구나!' 싶은? 근데 이건 웬걸? 결혼하니 으잉? 다시 내 미래가 또? 물음표가 생겼다.

 

결혼을 하면서 내 인생에 새로운 사람이 하나 생겼다. 그는 혼자만 온게 아니라 그의 가족과 함께 왔다. 또한 남편의 직장에 맞춰 미국에 오니 아무래도 남편의 직장과 일정이 중심이 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지사. 여러 상황에 맞춰 나도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씩 해왔다. 그런데 코로나로 막히면서 다시 또 방황- 내가 중심이었던 삶이, 남편과 함께 하면서 둘이 되고, 예상치 못한 외부 상황으로 갈피를 못 잡겠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찾았던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교파, 모든 구원론이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쓸모 없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의무요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각자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내면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따라 그 뜻대로 살며,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엇을 가져오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 데미안 제 7장 에바 부인에서 발췌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임의의 어떤 운명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찾는 것이고, 그 운명을 자기 내면에서 온전히 끝까지 살아 내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이고, 도피의 시도이고, 대중의 이상으로의 재도피이며, 적응이자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데미안 제 6장 야곱의 싸움에서 발췌

 

 

아무래도 몇 년에 한 번씩 또 찾지 않을까 싶다.

리디북스에서 다시 찾아 읽은 데미안

 

2020.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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