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일자리 후기 1 글 아래 첨부.
2021/01/19 - [인생경험 기록중] - 한국판 뉴딜 일자리 후기 1 - 저희 언제 일 시작하나요?
<2단계 - 공통조사> 10월 둘째주~11월 첫째주까지.
이 시기에는 각자 맡은 조사 대상과 접촉하여 조사 결과지를 받아야 한다. 공통조사의 조사 대상은 크게 3분류로 나뉜다. 주민, 공무원, 사회적 경제 기관. 주 20시간 조사원들은 주민과 공무원을 담당하였다. 사회적 경제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설문지 조사 내용이 많은지라 주 40시간 조사원들이 담당하였다. 그중에서 나는 홀로 공무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공무원 20~25명 내외.
사회적 경제 기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비대면 조사를 해야 하는지라 사실 공무원을 담당하든 기관을 담당하든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걱정은 전화로 비대면 조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공무원들 업무 특성상 전화로 민원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테고, 전화 거는 경우, 윗선에서 바로 받을 확률도 낮을 터인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아! 해보는 거지! 오랜만에 하는 업무니 즐겁게 하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사 진행 전부터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듯 조사 교육은 날림처럼 진행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조사 시작 전부터 준비가 미비했다. 최종 설문지라고 받았는데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발견되거나 조사 진행해야 하는데 공문이 아직이라거나. 특히, 공무원이 조사 대상인 경우, 공문은 마패와 같다. 공식적으로 조사 참여를 요청하는 증명서와 같은지라 꼭! 무조건! 필요한데 공문이 내려오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중간 코디네이터에게 물어보았다.
중간 코디네이터는 지역에서 잔뼈 굵은 시민단체 활동가. 중구난방 날림 조사를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는 아주 힘든 역할을 맡았다. 중간에서 고생이 많은 그가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업무를 접근하는 방식이 나와 달라 불편했다. 코디네이터는 공문 없이 먼저 공무원에게 연락을 돌리라고 했고, 공문이 나오면 나중에 보내주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나는 조사 요청 전에 기본 문서 정도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공무원도 다양한 반응이 있을 터이니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최대한 준비된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싶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기본 중의 기본 공문 아닌가.
하지만 코디네이터 말처럼 연락을 안 돌리고, 공문을 기다리기에는 나 진짜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그래도 시간당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공문만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전화 연락을 먼저 돌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공문을 먼저 요구하는 경우, 전화를 계속 받지 않는 경우, 조사 설명 전부터 왜 본인에게 전화를 했는지 설명해보라는 경우 등등. 별별 상황들이 많았다.
몇 가지 인상적인 경우를 기록해보자면.
1. 사회적 경제 관련 부서 공무원
- 적극적 혹은 반소극적이지만 조사에 참여함
2. 사회적 경제 약간 걸친 부서 공무원
- 적극적
- 반소극적
- 윗선에서 참여하면 본인도 하겠다는 경우
3. 사회적 경제와 관련 없는 부서 공무원
- 참여 거부
- 윗선에서 참여하면 본인도 하겠다는 경우
연락 리스트는 사업 수행기관에서 받았다. 중간 코디네이터는 사회적 경제에 관련 있는 부서 다수, 관련 없는 부서를 소수로 섞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를 믿는다면서. 날 뭘 보고 믿는다는 건지. 물론, 그 말 뜻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복잡한 일은 아니니 문제가 나오지 않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해주면 좋겠다는 뜻이지. 그 정도 눈치는 아직 있었다.
처음에는 맨 윗선. 과장을 공략하였다.
어떤 조직이든 특히 공식적인 공무원 조직이라면 당연히 위를 제일 먼저 공략해야지! 연락을 돌렸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보기 좋게 퇴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로 받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받지 않을까 했는데... 실패.
두번째는 사회적 경제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부서에 연락하였다.
바로 연락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었다. 물론, 그들도 매우 바쁜 관계로 조사 설명을 다 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모든 공무원이 적극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또 다른 업무 추가와 다를 바 없을 터이니.
세번째, 사회적 경제 약간 걸친 부서에 연락하였다.
사실 이 경우가 애매했는데 사회적 경제에 대해 모르는 담당에게도 조사 내용을 설명하고 참여를 부탁해야 했다.
한 번은 한 공무원이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따로 전화 연락을 하시는 것보다 먼저 공문과 설문지를 쫙 뿌리시는 게 어때요? 보통 공무원들은 그렇게 조사 참여를 안내 받거든요. 혹은 사회적 경제 부서 팀장님께 조사 부탁을 하시고, 그 팀장님께서 부서 과장님께 조사 참여를 부탁하시면 과장님 지시로 부서 팀원들이 조사에 참여를 할 텐데요. 저희 부서에 전화를 여러번 하시니까 저희 과장님도 좀..."
난처하지만 말을 잘 돌려가며 이야기하는 공무원이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퀴에 일 끝내면 참 좋죠. 그런데 이렇게 개개인 전화 돌리는 게 제 일이에요... 평소처럼 전체 공문이 나가지 않은 건 뉴딜 일자리랍시고, 저 같은 조사원을 뽑아서 이렇게 전화 돌리는 일을 만든 거라서. 그렇게 과장님 말 한마디면 부서 팀원 전원이 조사 참여를 수월하게 할 텐데 말이죠.' 내 입장은 말하지 못하고. 공무원에게 말씀 감사하다고 말하며 전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현타가 왔다-
네번째, 전혀 관련 없는 부서 공략.
정성스레 조사 설명을 했지만 삐- 간단하게 칼 거절. 이해한다. 일절 상관없는 부서에서 무슨 조사를 참여한단 말인가? 조사 참여 대상자 리스트에 넣은 것부터가 잘못된 거지.
골치 아팠다. 골치 아프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조사 거절 당하거나 전화 연결이 수없이 안 되는 건 그래,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세번째, 매번 부서에 자주 전화를 돌리는 나에게 조언과 걱정을 해준 공무원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아니, 그의 말보다 내가 그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전화 돌리는 게 제 일이에요.'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자주 말했다. "이 조사 사업의 목적은 일자리 창출입니다." 조사 진행 중반쯤에는 이 문장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들리기도 했다. '조사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일이든 당신들 일자리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요.'
사람이 일을 하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라 생각한다. 첫 번째, 수입 창출. 두 번째, 본인의 가치 실현.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아는 것. 한국판 뉴딜 일자리는 첫 번째 의미는 잠깐 달성했을지 몰라도(그것도 단기적으로) 두 번째에서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한동안 동네 공원을 지나갈 때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코로나 예방이 적힌 현수막 양 끝을 잡고, 길에 서있었다. 처음에는 '저게 뭐지? 왜 추운데 저렇게 서 있으시지?' 싶었지만 곧 알 수 있었다. 저분들도 나와 같은 일자리 참여 중이라는 것을. 그런데 왜 굳이 저런 방식의 일자리일까. 나이가 있는 이들의 일자리는 수입 창출 외에도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을 터인데. 아무 말 없이 현수막을 잡고 몇 시간 길에서 서 있는 저 활동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마다 의견차는 있겠으나 나에게 뉴딜 일자리는 사람들에게 그냥 돈 쥐어주기는 뭐하니 의미 없는 거라도 일자리라고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활동. 딱 그 정도였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 간의 만남이나 조직화를 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결혼으로 인한 경력 단절의 시간을 끊어보려 시작한 일이었는데. 자신감보다 자괴감이 더 드니 이건 뭐.
그렇게 공통조사는 한달만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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