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내가 작아질 때

결혼

한없이 내가 작아질 때

이보통입네다 2020. 10. 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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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한없이 작아질 때, 한없이 움츠려들 때, 한없이 한심할 때. 돌이켜보면 많은 순간들이 생각나지만 나는 유독 결혼 후, 종종 작아진 나를 발견한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미국에서 살고 있다. 과거 20대 초반에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1년 지낸 적이 있다. 결혼 전, 내가 상상한 외국 생활은 호주 생활에 머물러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조건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내 나이가 30살이 넘었다는 것, 그 사이 직장생활을 했었다는 것, 미국에 가는 이유가 결혼으로 인한 것 등등 많은 조건들이 있었으나 염두해두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에서 한없이 쪼그라든 내 모습을 발견했다.

 

제일 큰 이유는 새로운 진로 찾기에 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7년간 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살게 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당연히 내 진로가 바로 걱정되었다. 알아본 바, 미국에서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석사 MA 과정을 밟아야 한다. 미국에서의 학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직장을 더 수월하게 얻기 위해서는 석사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 후가 문제다.

 

기존에 해왔던 사회복지를 할 것인가, 이번에 새로운 길인 한국어 교사를 시도해 볼 것인가. 여기서 갈림길이 생겼다.

- 사회복지

미국에서 사회복지 과정은 학사로 바로 취직을 할 수도 있고, 석사과정을 거쳐 임상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시험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 했던 일의 연장선으로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 한국어 교사(대학교 시간 강사 원함)

대학교 때, 외국인 학생들과 한국어 공부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을 땄다. 언어 공부라 어렵기도 했지만 실습하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매우 재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미국에 왔는데 역시나 한국어 교사도 바로 직장을 구하긴 어려웠다. 자원봉사가 아니면 모를까. 미국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려면(나 같은 경우는 대학교 시간 강사를 원한다) 언어 관련 석사 + 경력 1~2년 이상 + 원활한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 

 

똑같이 둘다 석사 과정을 거친다면 확실히 사회복지가 더 유리하다. 기본 과목이 학사 때, 배운 것들이고 개념 또한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어(언어학)는 자격증 2급을 따서 복수전공으로 학위를 따긴 했지만 2년 동안 짧게 배운 것이라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 MA를 한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자격증 시험을 또 봐야 하고, 직장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 반면 한국어 교사를 위한 언어학 MA는 그 이후, (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를 하고자 하는 한) 따로 자격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이 두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한국어(언어학)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여전히 고민거리다. 이 고민은 꽤나 길게 했다.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일 다니면서 공부했는데 그때부터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몇 년간에 걸친 고민이다.

 

나의 길은 도대체 어디에?!

 

남편은 내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새로운 일에 두려워하거나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작아짐을 느낀다. 뭐랄까. 한국에서 큰 직장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과 가치관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즉, 일은 내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서로 일의 어려움도 들어주고 으쌰으쌰도 하다가 각자 자기 일에 돌아가 시간을 보냈다. 내 일에 대해 내 생각과 내 주관으로 남편과 소통하고, 내 자리로 돌아가 내 역할을 하는 것. 그게 직장이었다. 그러다 일이 없어지니 내가 한없이 작아졌다. 결혼 전에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하던 일이 없어지니 내가 힘없는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결혼 후에도 내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게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다만 나에게는 일이 생산적이고, 나의 행동으로 발현되는 장이기에 필요하다. 지금 그 고통의 과정을 서른이 넘어 다시 겪고 있는 것이다. 사실 행복한 고민이다. 이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 온전히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도,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도. 이 모든 것이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 것을 스스로 계속 상기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삶에 무수한 기회와 선택들 사이에서 나는 또 어떤 결정을 할까. 그게 내 삶을 얼마나 많이 바꿀까. 

 

예전 직장 상사가 나에게 말했다.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야 내가 큰다고.' 맞다. 내가 지금 상황에 있지 않다면 난 예전 일을 쭉 하면서 공부를 다시 할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결혼을 선택했고, 지금의 상황에 놓여있다.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결과이다. 그렇기에 고민과 어려움에 의연할 필요가 있다.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하자. 그리고 선택하면 거침없이 뒤돌아보지 말고 하자. 나에게 다시 돌아올 시간도, 기회도 아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해하자. 

 

오늘은 여기까지-

 

2019.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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