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동네에서 간단히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 누군가 나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툭하면 길거리 '도를 믿으십니까' 이들에게 많은 구애를 받기에 처음엔 혹시나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중국인 중년 남성이 길을 물으러 나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 내가 그를 의심하는 잠시의 눈초리를 느꼈을터인데 싶어서.
그는 한국어를 잘 못했다. 본인 휴대폰 문자 메세지를 먼저 보여주는데, 메신저에는 중국어와 한국어가 번역되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 5글자로 내가 유추할 수 있었던 건 한 가지.
- 그가 버스 정류장을 찾고 있다는 것.
스무 발자국 정도 걸어가면 있는 버스 정류장을 가리키며 "저기에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 듯했다. 그는 띄엄띄엄 단어를 말했다.
"버...스... 서...울" 대략 3분 정도 대화에서 그는 이 두 단어만 말했다. 두 단어에서 내가 유추할 수 있었던 건 한 가지.
- 우리 동네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찾고 있다는 것.
그와 내가 서 있는 길 건너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타야 서울 방향으로 가는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팔과 손을 휘저어가며 "저기 건너편에서 타야 해요."라고 말했다. 근데 씁... 그가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았다. 아... 이를 어찌하지... 여러번 똑같은 말을 하니,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더니 갔다. 정말 알아들은 것일까?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그의 웃음에 알았나 보다 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몇 발자국 못 가서 마음이 찝찝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아! 파파고 번역기! 아! 그걸 켜고 말할걸. 아까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집에 가는 길, 그 아저씨는 잘 찾아갔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알 수 없다. 아니, 크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한국에서 살 때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삶의 애환과 어려움은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사는 것은 외국에서 거주할 때보다 훨씬 편리한 점이 많다. 그러나 미국에 가니 간단한 것 하나도 다른 것도 많고, 말도 편안하게 안 통하고, 답답하고 어려움이 많았다. 타지에서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경험하니 이제는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달라졌다.
타지에서 얼마나 힘들까,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에서 살기 힘들 텐데, 본인의 언행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이들과 의도적으로 얕보는 이들에게 차별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복잡하고 서로 다른 행정 업무에 어려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경쟁심 강하고 빡빡한 한국 사회에서 치여서 살고 있진 않을까, 얼마나 가족들이 보고 싶을까.
한국인이 다수인 세상에서 소수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안타깝고 동질감이 느껴진다.
사회 문제와 소수에 관심이 있어 사회복지도 하고, NGO 일도 했지만 내가 상대방을 잘 안다는 건 거짓말이다. 값싸고 일시적인 동정심도 아니고, 고매하고 우아한 삶의 철학이 있어서 그 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결국은 나 또한 상대를 다 이해하지 못했구나, 그저 예상하는 정도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가 아는 선에서 보고 느끼며 일을 했을 뿐. 부족한 내가 일을 하면서 스스로 잘 안다고 자만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줄걸. 오늘 그렇게 바쁜 일도 없었는데. 그 몇 분 쓰는 게 뭐 어렵다고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은 사람을 그냥 보냈을까. 그 아저씨는 서울에 무사히 잘 갔을까. 가는 내내 사람들은 그를 많이 도와줬을까. 나처럼 처음에 아저씨를 대할 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을까. 마음이 내내 걸린다. 생경한 길거리에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 마음이 찡하다.
2019.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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