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아듣지 말지어다-

결혼

꼬아듣지 말지어다-

이보통입네다 2020. 10. 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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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남짓 미국에서 결혼생활을 보내고

나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남편은 일을 한 달 정도 더하고 나중에 들어올 예정이라

나 혼자 들어왔다.

 

처음에는 익숙하고 복작복작한 한국이 좋고

자유롭게 편안하게 느껴졌으나

매사 좋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에 간 친정집은

내가 한국에 있는동안 머물기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동생의 눈치와

더 이상 내 방이 아닌 아빠의 서재가 

지내기 불편했다.

 

남편 없이 

혼자 시댁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만남은 역시 편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형님이 두 명이 있다.

리더감이고 듬직한 첫째 형님과

세심하고 자유로운 둘째 형님이다.

항상 맏이로 자라와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막내아들의 며느리로 시댁에 막내가 되니

챙김을 많이 받는다.

 

형님들은 남편 따라 미국에 간 나의 생활을 걱정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느냐,

외롭지는 않냐,

힘들지는 않냐,

걱정해주고 신경 써주는 질문임에도

매번 이런 질문에는 답을 해야지만 

이 대화가 끝난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시댁 어른들에게 100% 편안하고 솔직하게

외롭냐는 질문에 - 외로운 상황과 경험을

힘드냐는 질문에 - 힘들었던 상태를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오랜 기간 남편과 함께 고민했던 공부에 대해 말했다.

그곳에서 나의 비자로 일을 할 수도 없고,

영어도 더 공부해야 하고,

한국어를 외국인 학생에게 가르쳐보고자

한국에서 따간 한국어 자격증도

대학교에서 가르치려면 석사학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동네에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학원이나

커뮤니티는 존재하지 않으나

대학교가 있는 캠퍼스 타운이라

학교 안에서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석사학위를 공부하고자

지금 영어시험을 공부하고 있다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첫째 형님이 말했다.

해외에서 석사 공부는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거기서 꽃꽂이나 요리 클래스 없냐고.

예쁘고 좋은 것만을 보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뭐라 바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내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았다.

기분 나쁜 감정이.

 

집으로 가는 길,

형님의 말을 곱씹으며

내가 왜 그런 더러운 감정이 들었는가를 생각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친정 부모에게 간접적으로 손주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시댁의 입장과 형님의 말이 겹쳐지면서

내가 꽃꽂이를 하고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가정주부가 되기를 원하는 건가.

내가 현모양처를 원했다면 좋았겠다만

내가 원하는 삶은 그것만이 아닌데.

안그래도 시댁에서 유일하게 손주를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나와 남편밖에 없기에.

그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러운 것을.

 

한국에서 내 가치관과 주관을 갖고 일한 직장인이었고,

부족했지만 혼자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월급을 벌었고,

경력을 쌓고 있었고,

그에 따른 지인들이 있었으나

남편을 따라 간 미국에서 나는

'남편의 부인'이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알고 갔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갔지만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고민한 내 뇌와

부족한 자존감의 온도 차는 예상보다 컸다.

 

형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었다면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생활과 내 상황에 고민이 많은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니 여러 의미로 들렸던 것이다.

 

실제로 형님이 어떤 의미와 뜻에서 말했는지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문장 그대로의 의미였을 수도 있고,

여러 의미를 함축한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듣기로 했다.

시댁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 않은가.

상대의 말에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뿐더러

나중에 돌이켜보면

상대방 말의 뜻을 찾으러 고민하느라

정작 내 의견은 뒷전이기 일쑤였다.

또한 결국 내 고민과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기 쉽기에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형님의 말이

내 상황을 더욱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내 계획과 고민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었다.

 

꼬아 듣지 말지어다-

 

내 자신에 집중하며 꿋꿋하게 해나가도록.

잊지 말자.

 

2019.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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